공무원들이 아무 생각없이 밀어버린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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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황족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 이력이 있는 의친왕이 지내던 사동궁.
의친왕이 광복 이후 사기당하고 사동궁의 소유권은 이리저리 팔려다니다가 서울시가 일부 매입함.
이때 사동궁은 다원이라고 부르는 요정, 그러니까 고오급 룸쌀롱집이 돼버렸는데 나라에서
성매매 단속한다고 강경하게 나서니까 별 생각 없이 밀어버렸음.
근데 그걸 어떤 외국인이 이 건물에 어떤 내력이 있는지 아냐면서 항의하니까
공무원들이 일제시대 지도를 가져와 살펴보더니 당황했다고 전해짐.
지금 사동궁 부지는 주차장으로 운영하고 있음.
관련자료
댓글 5
닉이머야님의 댓글
상세히 나와 있는 사이트를 찾았습니다. 요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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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사저 사동궁의 역사와 강탈 과정
• 사동궁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5남인 의친왕 이강의 사저이자 1906년에 설치된 의친왕부로, 양옥과 한옥 수십 동으로 구성되었으며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 1910년 한일병탄조약 체결 후 의친왕이 공족으로 분류되면서 사동궁은 '이강공저'로 불렸고, 의친왕이 대동단 사건으로 강제 은거한 후에는 장남 이건 왕자가 세습하며 '이건공저'로 불렸습니다.
• 사동궁은 1906년 의친왕부 설치 이후 의친왕의 항일 독립투쟁 본거지이자 성지였으며, 한국 기원의 모태인 한성기원이 와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원 자리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 이승만 정권은 1945년 구황실재산처리법을 제정하여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매각하였고, 사동궁 역시 1947년 민간에 불하되는 과정에서 강탈당했습니다.
• 의친왕은 주변 권력자들의 협박과 공갈로 인해 시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사동궁을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동궁은 시가 3500만 원이 넘는 대규모 궁지였으나, 12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강매당했으며, 사기 매각 사건을 맡았던 강석복 검사는 이후 부당하게 직위를 박탈당했습니다.
• 현재 사동궁터는 흔적도 없이 멸실되어 SK빌딩, 인사동 관광홍보관, 주차장 등이 들어섰으며, 300년 넘은 회화나무만이 당시의 역사를 증거하며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http://www.imperialhouse.kr/sub04/sub04_0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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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사저 사동궁의 역사와 강탈 과정
• 사동궁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5남인 의친왕 이강의 사저이자 1906년에 설치된 의친왕부로, 양옥과 한옥 수십 동으로 구성되었으며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 1910년 한일병탄조약 체결 후 의친왕이 공족으로 분류되면서 사동궁은 '이강공저'로 불렸고, 의친왕이 대동단 사건으로 강제 은거한 후에는 장남 이건 왕자가 세습하며 '이건공저'로 불렸습니다.
• 사동궁은 1906년 의친왕부 설치 이후 의친왕의 항일 독립투쟁 본거지이자 성지였으며, 한국 기원의 모태인 한성기원이 와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원 자리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 이승만 정권은 1945년 구황실재산처리법을 제정하여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매각하였고, 사동궁 역시 1947년 민간에 불하되는 과정에서 강탈당했습니다.
• 의친왕은 주변 권력자들의 협박과 공갈로 인해 시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사동궁을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동궁은 시가 3500만 원이 넘는 대규모 궁지였으나, 12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강매당했으며, 사기 매각 사건을 맡았던 강석복 검사는 이후 부당하게 직위를 박탈당했습니다.
• 현재 사동궁터는 흔적도 없이 멸실되어 SK빌딩, 인사동 관광홍보관, 주차장 등이 들어섰으며, 300년 넘은 회화나무만이 당시의 역사를 증거하며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http://www.imperialhouse.kr/sub04/sub04_02.ph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