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70년대 집밥 먹는 모습에 달린 댓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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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아이디을새로만드는데메일이기억이안남님의 댓글

저는 저희 세대가 물질이 풍족한 세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글을 보니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되는 게시물이네요



냉장고에 먹을거를 잔뜩 넣어두고 귀찮다고 먹지않는 제 모습이 귀한걸 귀한줄 모르는거같어요

안전가옥님의 댓글

나 90년생인데 학교 갔다와서 보자기 푸는데 울엄니 머리에 보자기 씌워져 있음. 알고보니 나 고깃국 먹이려고 머리카락 잘라 판거임. 근데 헤어디자이너한테 잘라서 미용비가 더 듦

콘소메붕어빵님의 댓글

저도 93년생인데 어렸을때부터 돈돈돈 ..

치킨이너무먹고싶어서 엄마몰래시켰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돈없다고 취소시키고 난 서러워서 미친듯이울고.. 서울에 이사와서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월세방에 살았다...

평생 월세만살겠구나 결혼도못하겠구나 돈은내가벌어서 월세내가 내고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진짜 운좋게 주변에 구축빌라가 엄청 싸게 집을 내놓아서 가족들 전부 돈모아서 집사서 들어갔음... 인테리어는 돈이너무많이들어 모든걸 내가 사서 페인트부터 집수리란 수리전부하고 그래도 이제 어머니 맘편이 눈치안보고 살으라고 리바트가서 주방인테리어는 했네요..





지금생각해도 난 지금이 너무 행복함 너무힘들고 주눅들었기때문에...

찾아왔습니다님의 댓글

60년대생 아부지, 일찍돌아가신 할아버지 충북 제천에서 할머니와 5남매가 같이 살았다. 맏아들인 아버지는 13살의 어린 나이로 새벽엔 땔감을 가지러 나갔나가 학교갈 시간에 맞춰 귀가해 동생들이랑 손잡고 학교를 다녔다한다, 학교를 끝마치고는 다시 돌아와 다음날, 그다음날, 그 언젠가의 다음날을 위하여 땔감을 지고다녔고 그렇게 컸다고 한다.

할머니가 하시던 옷장사가 잘되어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 남들 찢어진 신발 신고다닐때

비록 브랜드가 무언지 모를 시절에 운동화를 신고다녔다고 한다.

아버지가 땔감 주으러 다니던 13살 , 나의 13살에 땔감 이야기를 자주해주셨다.

그렇게 컸다고 한다. 어느순간부턴 남들 못챙겨먹을때 아버지 집은 그나마 살림이 풍족은 아니지만 여유가 있었다 하며 그렇게 무지막지한 군대를 무사 전역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어머니를 만나셨다고 한다.

어머니를 만나기 시작한뒤로 하루 24시간 한달 30일 일년 365일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만나고 늘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걸까? 현재 와이프와 6년 연애할때 하루이상 못만난적이없고

결혼 4년차인 지금 하루이상 떨어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야기가 정직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본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본문의 어울리는 글은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되어야 들을수 있을듯 하며 그 시대를 겪어온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인생 선배님들 늘 존경합니다.

-91년생 지나가던 사람-

유비님의 댓글

사진 보니까  누나 형들 생각남

난 한옥집에서 태어나서 10살까지 살았는데

사촌형누나들 같이 살았음

맨위 큰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셋째누나 백일 때 맨위큰어머니가 집안살림 가지고 도망갔다함..

그리고 이혼하신 고모가  할머니 구박받으며  세남매 또 델고 들어오심  울 엄마가 여섯 조카 밥해주고 도시락 싸주고..ㅎㅎ

엄마는 엄청 고생하셨지만...

난 형들 누나들 같이 산게 아직도 추억으로 깊게 잡혀있음

친형제가 없었지만  있는 듯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88올림픽 때  다 모여서 응원하던거 생각남 ㅋㅋ



밥먹을 때 교자상만 네개임 ㅎㅎㅎㅎ

여름에는 대청마루에서 먹고

겨울에는 안방에서 먹었는데 음식솜씨 없던 할머니는 울 엄마테 매번 고맙다고 맛있다고 하셨음



그냥 나이 40대에 대식구로 살던 과거에

매일 매일  식사라는 행사 힘들게 차리셨던 엄마랑

맛있게 나눠먹던 형들 누나들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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