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학살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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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ㅅㅇㅅㅇㅅㅇㅅㅇ님의 댓글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문법나찌님의 댓글
4•3은 단순히 정부군 vs 민간인 구도로 보면 안됩니다.
(1) 정부군이 있었고,
(2)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에게 선동된사람들이 있었고,
(3)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던 무고한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정부의 안일한 진압이 원인이겠지만, 6.25전쟁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현대적인 통신을 갖추지 못한 경찰들의 혼란도 짐작이 됩니다.
한국정부는 (3)번에 해당하는 시민들을 추모하고 그 유가족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때다싶어 (2)번들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4•3을 앞두고서는 항상 슬픈 격언이 떠오릅니다.
"해충을 잡을때는 또한 익충의 희생이 따른다"
(1) 정부군이 있었고,
(2)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에게 선동된사람들이 있었고,
(3)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던 무고한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정부의 안일한 진압이 원인이겠지만, 6.25전쟁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현대적인 통신을 갖추지 못한 경찰들의 혼란도 짐작이 됩니다.
한국정부는 (3)번에 해당하는 시민들을 추모하고 그 유가족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때다싶어 (2)번들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4•3을 앞두고서는 항상 슬픈 격언이 떠오릅니다.
"해충을 잡을때는 또한 익충의 희생이 따른다"





